김영하 장편소설 :작별인사 "나와 인연을 맺었던 존재들은 빠짐없이 이미 우주의 일부로 돌아갔다."
김영하 장편소설 "작별인사"를 읽게 된 것은 지극히 우연이였습니다. 인터넷 서점에서 이런저런 책들을 둘러보다 무의식적으로 끌려 구매하게 된 책입니다. 다소 철학적일 수도 있는 내용의 "작별인사"는 인간으로 살다 죽어간다는 의미에 대해서 생각하게 됩니다.
철이는 휴먼매터스 캠퍼스 안에서 외부와 단절단 채 아빠와 평화롭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운동을 나간 아빠에게 우산을 가져다 주려 나갔다가 검은 제복을 입은 이들에게 붙잡여 가게 됩니다. 무등록 휴머노이드라는 이유였습니다. 철이는 외칩니다. " 보시다시피 저는 인간인데요. 휴머노이드 아니에요."
하지만 인간이라는 표시는 뜨지 않고 무등록 표시는 붉은 색의 R자만 번쩍일 뿐입니다.
'바깥'은 분명히 있었다. 다만 무슨 이유에서든 내가 갈 수 없을 뿐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아빠는 나를 일종의 멸균 상태로 보호하려 했지만 결국 실패했고, 내 삶으로 틈입해 들어온 '바깥'에 나는 면역이 전혀 없는 상태로 노출되어 버렸다.(페이지 44)
철이는 수용소에 갇히게 됩니다. 휴먼노이드가 아니라 인간이라고 말하려 합니다. 하지만 그곳에서 만난 민이와 선이가 충고를 합니다. 기계인 척하라고 그래야 살아남는다고 말입니다. 수용소는 자신이 기계라는 것을 잘 아는 기계파와 인간의 기능을 그대로 흉내 낸 하이퍼 리얼 휴머노이드, 그리고 인간으로 세 가지 분류되어 돌아가고 있는 곳이었습니다.
우리에게는 매일 아침 개 사료 비슷한 알갱이들이 배급되었다. 사료는 먹을 때는 그럭저럭 나쁘지 않았지만 먹고 나서는 입안 곳곳에 찌꺼기를 남겼고 역한 입냄새의 원인이 되었다. 기계파는 우리가 사료를 씹어 삼킬 때마다 한참 바라보곤 했는데, 대체로 표정이 없는 녀석들 이어서 무슨 마음으로 그렇게 물끄러미 우리를 보고 있는 건지 정확히 가늠할 수는 없었다. 어쨌든 그 시선이 다가울 리 없었고 , 따라서 나는 내 몸에서 일어나는 모든 변화에 과민해졌다. 게다가 제대로 씻을 수가 없어서 시간이 지날수록 옷에서는 악취가 강렬하게 풍겼다. 로봇처럼 행동하려 나름 애썼지만 냄새는 감출 수가 없었다. 나는 연기를 처음 배우는 배우 지망생처럼 기계파를 흉내내기 시작했다. 일부러 살짝 부자연스럽게 걸어나니거나 아무 의미도 없이 벽에서 벽까지 한없이 왔다 갔다 하기도 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시간은 방전된 로봇처럼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며 누워 있었다(페이지 68)
수용소 생활을 살기 위해 기계처럼 행동하면서 아빠가 자신을 구하려 올 것이라는 희망을 품으면서도 시간이 지날 수록 자신이 버려진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게 됩니다. 인간 민병대원과 전투용 휴머노이드가 수용소를 파괴하게 되고 그 틈을 타 선이, 민이와 함께 탈출을 하게 됩니다.
민병대를 피해 도망치던 중 달마를 만나게 됩니다. 달마를 통해 철이는 인간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인간의 몸에서 태어나지 않았으며 왜 아빠는 있는데 엄마가 없었는지에 대해 의문도 해소되게 됩니다. 달마는 재생 휴머노이드였습니다. 달마는 인간 문명을 끝장낼 준비를 하고 있었고 철이는 아주 특별한 목적으로 제작된 휴머노이드라는 것을 알게 해 줍니다.
아빠와 연락이 가능해진 철이. 그리고 듣게 되는 자신의 탄생이야기. 아름다운 음악을 듣고 감동적인 소설을 읽고 살아 있는 새들과 공감하는 인류의 유산을 지키기 위한 존재로 만들어졌다는 걸 알게 됩니다.
철이를 구하려 온 아빠 최박사는 인간 문명을 파괴시키려는 달마의 계획을 무너뜨리기 위해 기동대에 신고를 하고 기동대가 오지 전에 철이를 데리고 가려고 했지만 계획은 실패하고 돌아가고 기동대에 의해 철이의 머리와 몸은 분리되어 버리게 됩니다. 철이의 머리를 집으로 가져온 아빠는 회사 몰래 철이의 뇌에 에너지를 공급해서 의식을 네트워크에 올리는 데 성공하게 됩니다. 철이의 의식은 인공지능 네트워크의 일부가 되어 영생을 누릴 수 있었지만 그는 포기를 하고 새로운 몸을 얻어 선이를 만나러 갑니다.
선이가 떠나고 홀로 남은 철이는 마지막 선택을 합니다. 인간답게 죽는 것과 영생하는 것.
철이의 선택은 인간다운 마지막을 선택하게 됩니다.
"작별인사"를 읽으면서 과연 인간과 기계의 차이는 무엇일까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지금도 인간은 기계를 의지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심장이 병들면 기계를 대신해서 살아가고 있고 이빨이 아프면 인플란트라는 대체제를 이용합니다. 기계 없이 자연 그대로 살고 있지 않습니다. 소설처럼 먼 미래 아니 가까운 미래에 인간과 비슷한 휴머노이드가 존재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소설에서는 결국 인간의 문명을 없어지게 됩니다. 클라우드 세상에서 영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몸은 없어지고 의식만 살아있는 세상. 지금은 상상이 가지 않지만 유령과 같은 세상일 것 같습니다.
삶과 죽음 그 경계선에서 인간다움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생각합니다. 인간의 필요에 만들어졌다 버려진 휴먼노이드 민이처럼 인간의 욕심은 어디까지인지. 결국 인간의 문명이 없어지는 것도 인간의 욕망, 욕심 때문이 아닌지도 모르겠습니다.
인간의 유전자 복제로 태어난 선이, 인간보다 인간답게 살아간 선이는 이렇게 말합니다.
"인간의 세상이 끝나가나다는 건 우리도 다 알아. 인공지능이 모든 것을 장악했다는 것도 알고... 그런데 우리는 더 큰 것을 믿어. "
"잠깐이지만 우주의 아름다움을 엿보고 갈 수 있어서 얼마나 기쁜지 몰라. 이걸 다시 보려면 억겁의 시간을 기다려야 할 거야."